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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소설·에세이

[책리뷰]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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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더 살찌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신남뽕짝하게 살아가기 위해 매일 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다짐하고야 마는 생활밀착형 유머서스펜스 다이어트(?)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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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죽도록 싫어하고 직장 눈치보지 않고 칼퇴근을 하며 시간을 쪼개 매일 3시간씩 글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 운동 부족과 매일같이 먹는 야식으로 20대 때보다 30키로그램 넘게 늘어난 체중으로 여러 가지 병을 달고 살게 되고 그는 오늘도 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마음만 먹는 사람이다.

 

작가는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을 한다는 본인의 고백과 같이 마치 앞에 앉아서 이야기하듯이 글을 써 내려간다. 잠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생겼는대도 일단은 계속 들어봐야지 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되고 술술 읽히던 아니 술술 들리던 그의 말을 끝까지 읽는데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그의 말을 끊고 말하고 싶던 것을 참기 잘했다. 끝까지 듣고 나니 비로소 그가 이해가 된다. 그와 내가 다른 점이 보였고, 세상 사람들과 그의 다른 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다이어트, 개집살이라고 표현하는 직장생활, 청첩장 문화, 배려를 포장한 다른 사람들의 참견과 오지랖을 적나라하면서도 아닌듯, 현실적으로 비꼰다. 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스스로 깨닫게 되기도 했다.

 

출처 : 네이버 책

 

내 슬픈 연애의 26페이지

네가 나쁘다는게 아니야. 그냥 점점 더 내 취향에서 멀어져간다는 거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나도 너를 위해 참고 노력하는게 많다고 하는 그녀 앞에서 이제는 정말로 이별할 때가 온 것을 깨닫는다.

그 후 취직을 하고, 등단을 하고, 책도 내며 인생의 여러 성과를 이뤄냈으나, 아주 오랫동안 자신이 게으르고 한심하며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는, 개선되어야 할 존재라고 믿어왔다. D가 나에게 말했던 그 언어로 나 자신을 책망해왔다.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친절하고 따뜻하고 좋았던 시간만큼, 관계의 깊이만큼, 딱 그만큼 나는 앓았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자기 관리'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 또한 내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며, 모든 관계에서 영원을 기약하지 않게 되었다.

 

 

 

최저시금 연대기

교직원이 내이름을 불러 카드를 쥐어주며 날씨가 더우니 사무실 직원들이 먹을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일은 내 업무 영역의 밖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에게 심부름을 시킨 교직원은 몹시 분해했으며, 다음 날 나는 센터차장의 호출을 받았다.

2019, 최저 시급은 8350. 나의 월급은 여전히 최저임금 언저리인데, 내 몸은 스무살 때에 비해 30킬로그램이나 더 쪄버렸다. 매일 운동을 하지만 살은 빠질 생각을 않는다. 신문은 연일 높은 임금 때문에 기업과 음식점들이 다 망해간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까지 서너시간동안 글을 쓰고,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하며, 집에 와서 쓰러져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내가 선택한 삶이라는 딜레마

최근 몇몇 신문 인터뷰에서 이런 나의 생활을 고백했을 때, 나의 성실성이나 의지 같은 것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보며, 심지어는 나로 인해 반성까지 하게 됐다는 댓글을 보며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나는 성실하지 않으며 내 생활은 건강하지 않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나는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멍하니 넷플릭스나 텔레비전을 보다 잠든다. 해야할 빨래는 잔뜩 밀려있고, 집은 점점 더 쥐굴같이 변해가며, 온몸에 염증이 늘어가고, 살이 찌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토록 두려웠던 일이 벌어지고야 만, 그 날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읽히고 싶은 욕망과,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숨기고 싶다는 욕망. 이 두가지 모순된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나는 지난 3년간 조금씩 나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어왔다.

집에 들어와 대충 짐을 풀고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저녁을 먹고 들어왔음에도 이상하게 또 찾아드는 허기, 이 배고픔은 진짜 배고픔이 아니라 단순히 정서적인 공허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끝에는 언제나 자괴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생각은 인간을 외롭고, 공허하게 만든다.

 

 

너무 한낮의 퇴사

나는 불친절한 김반장 옆에 앉아 최저가 물품을 검색하는 척 항공권 결제 사이트를 켰다. 제주도부터 동남아, 호주, 유럽까지 마구잡이로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하다 뭐에 씐 것처럼 빠른 속도로 결제를 했다. 30대의 어느 겨울, 나는 회사를 그만둘 것이며, 뉴욕에 갈 것이다.

나는 매일 싸우는 것처럼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 말이다.

 

 

 

유전, 그 지긋지긋함에 대하여

책에서는 어릴 적의 양육 환경과 유전자를 정서적 결핍의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었다. 역시나 모든 것이 부모의 탓이군. 괜히 탓한 구석이 생겨 기뻐진(?) 나였으나 기쁨은 이내 사라져버렸고, 이후 두시간도 넘게 병원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나는 의사에게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는지, 그러니까 종일 몸을 혹사하면서도 폭식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고, 나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같은 생활 패턴을 반복하다, 결국에는 일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생업을 유지하는데 실패하며, 완벽한 자유의 몸이 된 순간조차 자기 혐오에 빠져든 채 잠만 자게되는지, 물었다. 의사는 이런 현상의 원인은 다층적일 수밖에 없다며, 유년기의 정서적 방치나 환경적인 요인, 심지어는 유전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또 유전이야? 도대체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내 인생의 얼마난 많은 부분이 정해져 있었던 걸까. 한무더기나 되는 약을 타오며 나는 내 어릴 적의 기억을 되짚어봤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아빠의 의존적이고도 중독저인 성향과, 엄마의 감정 기복과 운동신경 없음이 골고루 섞인 합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아빠에게는 주식투자나 쇼핑중독으로 발현되었던 의존적 성향이 내게는 '폭식'으로 발현되었으며, 엄마의 조울증과 불면 성향이 합쳐져 지금의 고도비만인인 내가 완성된 것은 아닐까?

 

 

뉴욕뉴욕

한없이 나 자신이고 싶어서,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더 열심히 글을 쓸수록, 더 최선을 다해 노력할수록 오히려 내가 원하는 삶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쓸 때의 성취감이나 행복감은 금세 휘발됐고, 타인의 평가에 의해서 내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이 결정되고 있었다.

 

 

대도시의 생존법

인터넷 뉴스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면, 나의 신간과 관련된 여러 기사가 뜬다. 나는 화면을 보며 어김없이 매번 놀란다. 내 뜻과는 다른 기사 내용 때문에 놀랄 때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기사에 실린 내 사진이 그 원인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내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외면하고 싶을지언정 지금의 내 현실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을 것이다.

 

 

플라스틱의 민족

한아는 지구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자기 삶의 철학을 직업에 그대로 반영해 자신의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 살아가는, 보기 드물게 심지 곧은 사람이다. 나는 예전부터 한아와 같은 사람들을 애정해오고 동경해왔는데, 실은 내가 그런 삶의 철학이나 기준이 전혀 없고 설사 있다고 한들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악순환에는 결국 단 하나의 해결책밖에 없는 것 같다. 절제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이 때문에 나는 지금 배달 앱을 켜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오늘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 다짐하는 중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지구(?)를 위해서 말이다.

 

 

이를테면 나 자신의 방법으로

"너는 평소에 말하는 건 웃긴데, 이상하게 글만 쓰면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것 같아. 그냥 네 말투로 써봐. 너 답게"

앞선 질문과 더불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회사를 다니시면서 어떻게 소설을 두 권이나 쓰셨나요? 이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 역시도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하곤 하지만, 실은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게 있어서 회사 생활과 글쓰기는 마치 세트 상품과 같은 일이었다는 것을.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회사 생활의 다른 모든 업무와 다를바 없는 노동이지만, 실은 나는 글쓰기를 통해 일종의 존재 증명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아, 운동이라는게 되게 진실해. 안 하던 사람들은 일단 시작만 하면 되게 빨리 몸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게 하루에 한장씩 티슈를 얹는 거나 다름없거든. 요행을 바라지말고 매일 휴지 한 장을 얹는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해야 해"

 

 

 생에 마지막 점

집에 오는 길, 나는 결심했다. 사주팔자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기분 좋은 말을 듣기 위해 가는 것이니 이제부터 내 인생은 탄탄대로라고 믿기로 했다. 더불어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점은 없다. 그러니까 오늘 나는 내 인생 마지막 점을 본 것이다.

 

 

하루가 또 하루를 살게 한다.

지난 3년 동안 내가 써놓은 글들은 한 편 한 편 읽으며 몹시 부끄러웠다. 글은 마음의 거울이라던데 내 글 속에는 쓸데없이 불평이 많고 불필요하게 위악적이며 초 단위로 감정 기복을 반복하는 못난 사람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를,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 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고,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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