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끊이며
우선 이 책을 읽다가 라면을 먹었다. 김훈 작가가 말하는 요리법으로. 완전히 똑같이 하지는 않았다. 그는 물을 기준보다 많이 넣는다. 물이 넉넉해야 면발이 서로 엉키지 않고 편안하게 끓는다고 한다. 게다가 분말수프는 3분의 2만 넣는다. 싱겁게 먹는 타입이다. 대신 대파를 많이 넣고 달걀을 넣는다. 불을 끄고, 끓기가 잦아들고 난 뒤에 달걀을 넣는데 이렇게 해야 달걀이 파국물 속으로 온전히 스미어 들어간다고 한다.
이 책은 '밥, 돈, 몸, 길, 글' 5부로 나뉘어져 있어 중간중간 작가의 경험도 녹아있고, 역사적인 사실도 녹아있다. 작가의 솔직한 시대적, 역사적, 의식적 표현도 있다. 반일정서, 독재세력 비판 등이다. 작가의 경험이나 역사적 사실은 흥미롭다. 역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가장 재밌다. 집중이 잘 된다.
여행, 바다, 풍경, 여자, 쇠, 가마 등 어떠한 대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녹아있다. 대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지루하다. 그가 풍경이나 문화재같은 것을 묘사할 때는 국어 교과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크게 공감하지 못한 탓이다.
쉬운듯 어려웠다.
그의 글을 읽고 난 후, 글을 쓰면 그의 말투와 문체를 따라하게 된다.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의 저자 정스토리도 이 책의 반 페이지를 필사하고 글을 쓴다 했다. 그는 간단하면서도 깔끔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 접속어가 거의 없었는데, 쓸 때도 ‘그리고’, ‘그것은’, ‘그러나’를 연달아 써서 운율을 느낄 수 있다. 어쩔 때는 산문시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때로는 100자가 넘는 긴 문장을 쓰기도 했는데 오히려 머릿속에 자꾸 되뇌이기도 했다. 작가의 아버지의 생애와 죽음을 묘사했던 ‘광야를 달리는 말’에 나오는 구절이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4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다양한 어휘를 사용한다. 처음보는 단어도 많아 검색을 많이 했다. 그의 글은 쉬운 듯 어려웠다. 술술 읽히는 듯 하다가, 읽고 나면 이게 무슨 말이지? 했다. 친근한 라면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무거워졌다.
다시 라면으로 돌아와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라면을 끓이지 않을 수 없다.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도 오랜만에 라면을 먹었다. 작가는 자신의 '라면의 길'은 아직도 멀었다고 했다. 그의 레시피대로 요리한 라면 맛은 그저 그랬다. 하지만 여운이 있는 맛이다. 다시 라면이 생각나게 하는 맛이다.
저자 김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예스24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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