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둘째에게
안녕! 사랑하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는 너가 태어나기 전부터 널 사랑했고, 너가 태어나지 않은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너를 직접 보지는 않기로 했단다. 그저 우리의 마음에만 담고 있기로 한거다. 네가 우리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너를 보지 않기로 한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순간적인 충동이나 단숨에 내린 결정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네 오빠(또는 형)이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이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모두의 행복을 위해 너를 보지 않기로 결정한 거란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절대로 너의 불행을 원했던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결정이 너에게도 행복한 결과를 가져올거라 생각했다.
사실 나와 네 엄마는 서로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할 때까지도 너는 물론 첫째의 존재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단다. 순수하게 우리 둘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했다. 그런데 아이라는 존재가 태어나고부터 갈등도 시작되더구나. 우리 둘만 생각하며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 만들어졌다. 아이는 공짜로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랑과 정성, 노력과 시간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우리는 예전만큼 서로에 대해 배려와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없었단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으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기도 했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행복해야 우리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데, 지금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구나’라고. 물론 아이가 커나갈수록 점점 나아지기는 했다. 앞으로는 더 나아질거라 생각이 들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을 키우는 데는 사랑과 정성과 노력과 시간뿐 아니라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때부터 미래를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살아가기가 쉬운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늘 OECD 자살률 1,2위를 다투는 나라다. 우리나라에서 한 아이를 양육하는데 적게는 3억에서 많게는 5억까지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7%에 달하는데 자녀를 양육하느라 노후 준비를 잘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아이를 키우기에 힘든 나라다. 부모들은 교육열이 높아 경쟁적으로 사교육을 시키고, 아이들은 학업에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꿈과 낭만이 없는 청소년기를 보내기 일쑤다. OECD국가 중 늘 상위권에 있는 청소년 자살률은 힘든 우리나라 청소년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인 셈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경제적으로 많은 돈이 필요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누군가 한 명은 아이를 돌보아야만 하고 그렇게 되면 소득이 줄어드는데도 가족이 늘어 소비는 늘어나게 된다. 아직 어린 아기들은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커나갈수록 더 많은 경제적 부담을 짊어지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너에게 이런 돈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도, 너무 매정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돈은 현실이다.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첫째에게도 너의 존재는 미안한 일이 되더구나. 첫째에게 갈 사랑이 너에게 나누어지고 자연스럽게 첫째는 더 많은 책임감과 자율성이 부여될 것으로 생각했다. 첫째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못 하겠구나. 아빠는 남들보다 많은 형제가 있지만, 그들과 자주 왕래하는 편은 아니란다. 어렸을 적부터 서로 돕기도 하고 경쟁하며, 시기와 질투의 과정을 겪으며 지금의 나로 성장했다는 것에 감사하다. 지금도 그들의 존재는 든든하다. 하지만 늘 긍정적인 상황인 것은 아니다. 주변에 형제가 가까이 지내며 정을 나누는 경우가 100명 중에 1~2명이라는 사실은 현실이 늘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때로는 남보다 더 원수같이 지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너를 보지 않기로 했단다. 우리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아빠는 졸보다. 널 보기가 겁이 난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 겁쟁이 아빠를 부디 용서해다오.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우리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님을 꼭 말하고 싶구나. 이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있었을 너에게 꼭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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