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잊어 버린다 - W. 리빙스턴 라니드
아들아, 듣거라. 네가 잠든 사이에야 말하는구나. 말아 쥔 작은 손 하나를 뺨 아래 대었고, 금발 고수머리는 땀으로 젖은 앞이마에 달라붙어 있구나. 나는 지금 네 방에 몰래 들어와 앉아 있단다. 조금 전에 서재에 앉아 신문을 읽으려고 앉았는데 회환과 후회와 가책이 숨 막히게 밀려들어 왔단다. 죄책감이 든 나는 네 침대 곁으로 왔다.
아들아,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그동안 나는 너에게 신경질만 냈어. 얼굴을 수건으로 살짝 문질러 닦기만 했다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너를 꾸짖었지. 신발을 닦지 않았다고 너를 꾸짖기도 했구나. 물건을 바닥에 던졌다고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온갖 잘못을 지적하며 잔소리를 했구나. 너는 물을 엎지르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삼켰고, 한쪽 팔꿈치를 식탁 위에 올려 놓았고, 빵에 버터를 너무 많이 발랐지. 내가 기차를 타러 나가는데 놀려던 너는 뒤로 돌아 한쪽 손을 흔들며 말했지.
"안녕, 아빠!"
그때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렇게 대꾸했지.
"어깨를 펴라."
그리고는 저녁에 또다시 같은 일을 했지. 나는 길에 나가 너를 몰래 지켜보았단다. 너는 땅에 엎드려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지. 스타킹에 구멍이 나 있더구나. 당장 너를 앞세워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주었지.
"스타킹이 얼마나 비싼데. 네 돈 주고 사는 거라면 좀 더 조심해서 신었을 거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니! 그 다음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니? 내가 서재에서 글을 읽고 있을 때 네가 상처 입은 얼굴을 하고 조심스레 들어왔단다. 신문에서 눈을 떼고 방해를 받아 짜증스러운 얼굴로 너를 보니 너는 문가에서 주저하며 서 있더구나.
"무슨 일이냐?"
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지.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다만 한달음에 방을 가로질러 달려와 내 목덜미에 네 두 팔을 두르고 키스했지. 꼭 껴안는 네 작은 두 팔은 하나님께서 가슴속에서 피어주신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단다. 너를 무시하는 태도조차 무색할 뿐이었지. 그런 다음 너는 밖으로 나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지.
그래, 아들아. 그 직후였다. 내 손에 든 신문이 스르르 떨어지고 구역질 나도록 끔찍한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습관적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흠을 잡고 책망하는 그 버릇, 네가 아이라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해왔던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란다. 어린 너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있어서였다. 한참을 살아온 내 삶의 잣대로 너를 재고 있더구나. 너는 장점이 많고, 진실하며, 착한 아이란다. 네 작은 심장은 언덕 위로 솟아오르는 햇살만큼 커다랗단다. 자연스레 나에게 달려와 굿나잇 키스를 하는 네 모습에서도 알 수 있지.
아들아, 오늘 밤은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구나. 지금 나는 어둠속에서 네 침대 곁에 무릎 꿇고 앉아 부끄러워하고 있단다! 참 보잘 것 없고 미약한 속죄구나. 네가 깨어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해하지 못할 줄 안다. 하지만 내일이면 나는 정말 아빠가 될 거다! 너와 친구처럼 지내고 네가 괴로울 때 같이 괴로워하고 네가 웃을 때 같이 웃을 테다. 짜증 섞인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면 혀를 깨물거란다. 그리고 신성한 의식처럼 이 말을 되풀이할 거란다.
"우리 아들은 아이일 뿐이다. 어린아이!"
미안하게도 나는 너를 다 자란 어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단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고 웅크려 자는 너를 보니 아직도 어린아이란 걸 알겠구나. 어제 너는 엄마 품에 안겨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지. 너에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구나. 너무 많은 것을.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발췌되어 있는 '아버지는 잊어버린다'라는 글이다. 책을 읽었던 당시 아들이 있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이 글이 너무 크게 다가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자신의 기준에 의해서 남을 판단하고 잣대를 들이대는 흔히 속되게 표현하는 꼰대아빠. 그런 자신을 문득 깨닫고 반성하며 잠들어 있는 아들 곁에서 사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진실되게 표현되어 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 태어나서 나와 함께 울고 웃는 것만으로도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부모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몸소 깨닫게 해준 것. 너라는 우주를 알아갈 수 있게 해준 것.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 이런 모든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약간씩 닳아갈 때쯤 다시 읽어본다. 잊지 않기 위해 다시 읽어본다.
하루하루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를 보면 대견스러우면서도 아쉬움이 교차한다. 지금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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