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지면서 처음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먹고 나서 바로 실행을 옮기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급했다. 그렇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마련하면서 겁도 없이 큰 대출을 받았다. 속된말로 영끌이었다. 그 때 당시 이사갈 곳을 정해놓고는 1~2주일 정도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매물을 알아보았는데 대체로 비슷비슷한 가격이었다. 나는 그것으로 가격에 대한 정보를 어느정도 알아보았다라고 생각 했다. 참 어리석었다. 저평가인지 고평가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상황이 비슷한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집들을 모두 알아보는 것임을 그때는 몰랐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이런저런 부동산 관련 책도 읽어보고 독서를 하고 나서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아내와 살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철부지같은 마음으로 계약금을 넣고 계약을 하러 가던 날이 기억에 남는다. 아내와 계약서를 쓰면서 그 얼떨떨한 마음, 나도 모르게 떨리는 손,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불안함. 어찌되었든 계약을 마무리하고 이사를 할 즈음, 내가 산 가격보다 시세가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부모님의 걱정과 원망스러운 표정과 말을 들으면서 스스로 자책하기도 많이 했다. 이사하고 나서도 참 힘든 시간을 많이 가졌다. 눈물도 났다. 나는 비록 내가 살 집 한 채 마련한 것이었지만 투자에 실패하는 사람의 심정을 어렴풋이 경험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이대로 패배감을 가지고 살기는 싫다고 생각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우선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바닥을 친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뭐부터 시작할지 몰랐기에 우선 운동을 시작했다. 팔굽혀펴기를 하고 턱걸이를 했다. 독서를 시작했다. 경제 관련 서적, 부동산 관련 서적부터 읽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씩 앞당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성장할 수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지 몰랐다. 아무튼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지 않은 일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을 가슴깊이 새겨 놓아 잊지 않길 원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와 큰 변화는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내가 산 가격보다는 크게 올랐지만 그 집을 그냥 깔고 살고 있다는 사실은 다름이 없다. 조금 나태해진 마음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예전의 생각없이 살던 시절보다는 성숙해짐을 느낀다. 실수는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픔이 있어야 성장하는 것을 몸소 느꼈다. 잘 알지 못하면 급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된 계기였다. 얼마나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한 사람인가? 물론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고집과 자존심만 강하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차라리 노력을 하기로 했다. 고집과 자존심을 바꾸느니 내가 그만한 고집과 자존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자존감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지금도 노력중이다. 그때의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오히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 점에 감사하다. 그때 무식하게 추진하지 못했다면 난 그 상태 그대로 부침없이 발전없이 살아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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