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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인문·종교·철학·인간관계

[책리뷰] 상처받지 않는 영혼 - 마이클 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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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스24

들어가는 글
‘무엇보다도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 그러면 낮이 가면 절로 밤이 오듯이, 너는 누구에게도 거짓될 수가 없을 테니까.’ - 윌리엄 셰익스피어

용기를 내어 ‘자아’라는 말의 껍질을 들추고 그 속을 들여다보다 보면,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의문이 일어난다. ‘내 존재의 이 많은 측면이 모두 동등하게 나의 ’자아‘인가, 아니면 그중 하나만이 나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중 어느 것이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왜 그런가?

이 책에서 우리는 ’자아‘를 탐사하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는 하지 않을 것이다. 심리학자나 위대한 철학가에게 자문을 구하지도 않을 것이고 오랜 종교의 지혜로운 답을 놓고 갑론을박하거나 여론을 조사한 통계자료에 기대지도 않을 것이다. 이 큰 의문을 영원히 가라앉힐 만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에 평생의 날들과 하루의 매 순간을 바치고 있는 단 한 사람의 전문가를 찾아갈 것이다. 그 전문가는 바로 당신이다.

이 책의 각 장들은 당신의 ’자아‘를 여러 각도에서 비춰보게 하는 하나의 거울일 뿐이다. 우리가 떠나려는 여행은 내면의 여행이지만 우리는 당신 삶의 모든 측면을 기웃거릴 것이다.

명심하라. 우리가 ’자아‘의 근원을 탐사해 갈 때, 실제로 찾아가게 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임을.

곧 시작될 깨달음의 여행에 자신을 바친다면 당신은 자신의 진정한 본성에 대해 크나큰 존경을 갖게 될 것이다. 오로지 그때에만 당신은 ’무엇보다도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는 이 충고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안에는 수많은 지껄임들이 있다. 하루에도, 아니 몇 분 안에서도 수만가지의 생각과 감정들이 뒤엉켜 시공간을 초월하며 재잘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저자는 왜 그 목소리를 쉴새없이 지껄이도록 내버려 두느냐며 질문을 던진다. 아무런 저항없이 떠오르는 잡념들을 왜 가만히 두냐는 의미다. 그게 설사 위안을 주는 좋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오늘 아침에도 아내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게 사로잡혀 몇 시간동안 그 사건과 감정에 파묻혀 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니, 적어도 하루 며칠동안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생각에서 물러나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사실 아내의 말 한마디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고 납득이 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늘 그렇듯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 정확히는 나의 감정과 상황이 문제였음을 깨닫곤 한다. 더 정확히는 작은 사건을 두고 벌이는 온갖 나의 마음의 소동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내부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외부의 상황에 넋을 뺏기는 것보다 언제나 낫다. 이것이 영적인 사람, 곧 내면을 탐구하는 사람과 세속적인 보통 사람의 가장 중요한 차이이다. 세속적이라는 것은 돈이 많다거나 신분이 높은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내부 문제의 해결책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당신의 외부의 조건을 바꾸면 문제가 없어지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외부 조건을 바꾸어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한 적이 없다. 진정하고 유일한 해결책은 ’지켜보는 의식‘이 됨으로써 관점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아내의 말 한마디의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것이 아닌 전형적으로 사로잡힌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역할을 바꾸어야 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 해결을 한답시고 지껄이는 수만 가지의 목소리에 집중한 것이다. 외부의 조건을 바꾸면 문제가 없어지거나 해결하지 않겠냐고 생각한 것이다. 진정하고 유일한 해결책인 지켜보는 의식이 되는 관점을 갖지 못한 것이다.

 
 
자각몽이라 불리는 종류의 꿈이 있다. 자각몽 속에서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것은 꿈속에 완전히 빠져들어 버리는 보통의 꿈과는 사뭇 다르다. 이 차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이 경험을 인식하고 있음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와도 같다. 인식하는 자로서 있을 때는 주변의 사건 속에 완전히 빠져들지 않는다. 대신 당신은 자신이 그 사건과 생각과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자임을 늘 인식하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인식하고 있음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이것을 스스로 메타의식(Meta consciousness)이라고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의식이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메타의식이란, 사건을 겪고 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자임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메타의식을 가지면 경험을 통해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을 자기 자신에게서 분리하고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바라보는 경험과 인생을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듯이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영화의 장면은 끊임없이 바뀌고 위기가 찾아오거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해결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그저 지켜보는 무엇일 뿐이다.

 
 
가장 높은 영성의 길은 삶 그 자체이다. 이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당신은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이다. 간단하다.

늘 행복하기 위한 열쇠는 정말 단순한 것이다. 당신 내부의 에너지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내면을 잘 살펴보면, 행복할 때 가슴이 열리고 에너지가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 그저 늘 행복해하고, 가슴을 닫지 마라.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결코 가슴을 닫지 마라. 가슴이 닫히기 시작하면 그저 자신에게 행복을 정말 기꺼이 포기할 작정인지를 물어보라.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당신의 행복을 좌우하기를 당신은 원치 않는다. 당신의 행복이 당신 자신의 행동에 좌우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행복을 조건적인 것으로 만들기 시작하면 문제가 따라온다.

이것을 상기하기가 어려워질 때는 명상을 하라. 명상은 의식의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서 가슴이 닫히지 않도록 늘 깨어서 지키게 해준다.

삶과 인생은 그 자체로 고()는 말들을 많이 한다. 뉴스에는 이 세상의 온갖 부조리, 불평등, 불합리한 일들을 쏟아낸다. 우리는 그것들이 자신을 휩쓸거나 흔들도록 두지 말고 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닫는 것도 아니고, 저항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슴을 더욱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다. 온전히 삶을 경험하고자 하는 태도야말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삶이란 무엇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경험하는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활한 우주라는 허공 속에 돌고 있는 한 행성 위에 있다. 결국은 누구나 잠시 머물다 죽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굉장히 존중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는 구경할 아름다운 것들이 무수히 많다. 행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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