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입이 짧다. 아침으로 차려준 짜장밥을 3~4숟깔 떠먹더니 이내 먹기 싫은지 안 먹는다. 어르고 달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과감이 안 먹는 아이에게는 음식을 치우는 단호함을 보여준다. 사실 본질은 어르고 달래서라도 먹이고 싶지만 눈물을 머금은 체념이다. 거의 처음 그대로 남은 밥과 반찬을 설거지하면 기분이 상했다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식사 당번을 하는 입장에서(1년 째 하고 있다) 힘들게 차려준 음식을 잘 먹지 않는 것만큼 힘이 빠지는 일은 없다. ‘저 녀석이 배가 부르구나. 간식 주나봐라. 점심도 똑같이 짜장밥을 줘버려? 간식도 안줘서 배가 고프면 지가 안먹고 배기겠어?’ 라는 생각을 하며 아내의 밥그릇을 치운다.
텅빈 그릇에 짜장용 돼지고기만 5,6조각 옹기종기 모여있다. 아내는 순수하게 구운 고기만 좋아한다. 양념된 고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짜장, 카레,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고기는 조금도 안 먹는다. 어제 저녁 아내가 식사를 마치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오빠, 내가 읽은 책에 현대인이 단백질 섭취량이 부족하대. 특히 식물성 단백질이. 그래서 식비가 여유있으면 두유를 사 먹을까 해”
‘차려주는 고기나 잘 먹지. 까다로워서는.’ 엄마 입이 까다로워서 아들도 입이 짧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아들에게 간식을 절대 주지 않겠다는 결심은, 남은 음식이 눈에서 사라지니 '줄까 말까?'로 바뀌었다. 식사시간이 끝난지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들이 출출한지 다가온다. “뭐 맛있는 거 있나 보자”며 냉장고를 연다. 계란후라이를 해달란다. 결국 오늘도 내가 졌다. 엄마 입맛을 닮았다는 확신과 함께 두 번째 밥상을 준비했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데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은 부모가 되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다. 어느날 출근길에 이유없이 기분이 참 좋은 날이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이 아침밥을 잘 먹은 날임을 깨닫기도 했다.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큼 보기 좋은 것이 없다’ 라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고 있다. 어렷을 적 내가 잘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고 하는 부모님 말씀이 이제야 이해도 간다.(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 아이는 밥을 잘 먹는 편이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고 편식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을 같이 먹어서 메뉴 준비에 어려움도 그다지 없다. 온갖 김치도 잘 먹고 부대찌개, 순두부찌개, 추어탕도 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더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나의 욕심이 문제다.
우리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는 고민을 가진 어머니들이 많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는 가장 먼저 '내가 해주는 밥이 맛이 없어서 그럴까?' 라는 죄책감이 든다. 다음으로 '다른 집 아이는 잘 먹던데.' 라고 비교를 한다. 다른 아이는 쑥쑥 잘 크는 것 같은데 '혹시 성장이 뒤쳐질까?'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가 불안하거나 비교하거나 죄책감이 들어서 아이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여유있게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낫다. 먹는 것도 시기가 있다. 오늘 잘 먹다가도 내일은 안 먹기도 하다. 지금은 잘 안 먹더라도 본인이 많이 먹고 싶은 시기가 있음을 믿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자.
음식을 억지로 먹이지 말자. 억지로 먹다가 음식이 목이 걸리거나 불쾌감을 느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식사 시간 자체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조금이라도 먹던 것이 오히려 식사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아이가 잘 먹지 않을 때에도 아이에게 공감해주려고 한다. ‘○○아, 이제 그만 먹고 싶구나. 이제 정리할까?’ 라고 묻고 스스로 결정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의사 표현에 따라 음식을 치우기도 조금더 기다려 주기도 한다.
결국 억지로 먹이거나 불안해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단순한 부모의 욕심이고 노파심이다. 아이가 좋아할만한 신선한 음식을 늘 최선을 다해 준비해주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참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조용히 식사 전투를 벌이고 있는 엄마 아빠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특히 주부 아빠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함께 보낸다. 이렇게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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