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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기록

부양육자로서의 고충 (아이에게 미움받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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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육자로서의 고충 (아이에게 미움받을 용기)

 

일상적인 하루에 별다른 것 없는 시작이었다.

아들에게 "이번 주 연휴 기간에 아빠랑 OO에 놀러 가는 거 알고 있지?"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런데 엄마가 가지 않으면 자기도 안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옆에 앉은 아내는 아이가 그때 확실히 간다고 한 거 맞냐고 물었다. 설마 간다고 하지도 않은 애를 거짓말로 데려가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가? 내가 가고 싶어서?

 

갑자기 화가 올라왔다.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한 친구는 숙소도 이미 예약해 두었는데 아이가 일방적으로 갑자기 변심했다. 차라리 묻지를 않아야 했나?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숙소 예약 취소 부탁하는 것도 난처한데 그 상황에서 아이는 엄마에게 아빠 말을 믿어? 내 말을 믿어? 라며 삼각관계 줄타기(라고 쓰고 즐기기라고 읽는다)를 시작한 것이다.

 

 

"이미 약속한 거고 숙소까지 예약했으니 이번에는 싫어도 갔다 와야 해. 다음에는 가고 싶지 않으면 확실하게 말을 해"

처음부터 안 가고 싶었는데 억지로 가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다. 이제는 아이도 자존심인지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단호하게 안 가겠다며 울먹였다.

 

아내도 아이를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아 알겠다며 취소하겠다고 했다. 속으로 '앞으로 다시는 너와의 단둘의 여행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자리를 그렇게 마무리하고 밖에 나가서 생각을 정리할 겸 산책도 하는데 화가 서운함으로 서운함은 다시 화로 번져갔다.

난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가는 것이 나름 보람과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은 엄마가 없으면 어떤 여행도 가기 싫다고 하는 것(좋아하지도 않는 유치원에 가겠다고 할 정도로)이 서운하게 느껴졌다.

 

내 나름에는 아이와 관계도 돈독히 하고 싶고, 아내에게 약간의 자유시간도 주려는 배려인데, 이 행동이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도 굳이 원하지 않고 아들은 더더욱 원하지 않는데 나만 몰랐던 거다.

 

(평소 루틴대로) 자기 전에 아이를 안아주며

"아빠가 OO이 사랑해. OO이 아빠의 소중한 보물이야. 아까는 OO이가 갑자기 아빠랑 여행 안 간다고 해서 OO이가 아빠는 안 좋아하고 엄마만 좋아하는 것 같아서 서운해서 그랬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인에게 전화해서 안 간다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후 전화를 걸어서 양해를 구하고 취소했다.

 

 

 

좋은(perfect) 아빠 콤플렉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좋은 모습을 물려줄 수 있을까?

밝고 건강하게 삶을 즐기며 살아가게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정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육아를 시작하면서 책을 찾아보며 늘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문득 이런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기보다는 스스로 좋은 아빠만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거다. 아이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려고 나 스스로 괴롭게 만든 것 같았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요즘 젊은 아빠들이 자주 갖는 이런 심리를 ‘좋은 아빠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좋은 아빠 콤플렉스 :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지만 여러 이유로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해 힘들어하고 갈등하는 마음 상태

 

그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능한 만큼 아이와 함께 즐거우면 되는데, 충분히 좋은 아빠가 아니라 완벽한(perfect) 아빠, 남편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서 나오는 부작용 같았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매일 술을 먹고 술주정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빈둥대고 게임이나 하며 잉여 인간처럼 있는 것도 아닌데,

직업이 있고 의식주를 해결해주면서 적당히 건설적으로 운동하고 공부하고 밥을 차려주는 것만으로도 아빠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아빠’인데 말이다.

 

 

 

문제의 원인 : 나

아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예민하고 낯가림이 있는 성향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있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거부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커나갈수록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 걱정되었다.

성장할수록 엄마 집착 성향도 강해지는 추세였다. 나 스스로 약간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주변에서 들리는 ‘엄마 껌딱지네’라는 말과 ‘둘째가 있으면 첫째에게도 더 나을 거다’라는 말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주위에서도 문제의식을 느낀다는 뜻으로 여겨졌다.

‘가만, 주위에 저 정도로 낯가리고 내향적인 아이가 또 있었나…?’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면이 있다면 조금씩 중심을 잡아줘야 하고 최소한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부모로서 해야 할 역할 아닌가?

 

그런데 사실 사회생활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가 없으면 체념을 하는 건지 더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유치원도 걱정보다는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다. 낯가림이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주위 친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잘 놀았다.

 

그렇다면 문제를 바라보는 내가 문제인가?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가?

조금씩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두려움을 이겨나가는 경험을 갖고자 시도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힘들게 할 만큼 꼭 필요한 걸까?

 

 

 

 

아빠도 삐진다.

아무튼 이번에 여행 사건은 좋은 아빠,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의 균열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있는 그대로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나 스스로가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생각(강박)이 컸을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다.

 

사실 좋게 정리하면 문제가 무엇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되었고,

솔직하게 표현하면 그냥 삐졌던 것 같다. 아빠도 인간인지라 자주 서운하고, 자주 삐진다.

주양육자의 피곤함과 고충이 있다면, 부양육자로서 갖는 서운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가 믿고 의지하고 편안한 주양육자를 더 찾고 의지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주양육자도 부디 이런 부양육자의 고충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는 부채 의식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100점은 아니더라도 적당히 좋은 아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아무튼 요 며칠간은 참으로다가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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