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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기록

최악의 교사였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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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도구들'을 읽다가 여러 소재로 글을 써보라는 글을 읽었다. 오늘은 책에서 제시된 주제 가운데 '최악의 교사였던 사람'이라는 주제로 써보려 한다.

내게 최악의 교사였던 사람을 써보라 한다면 고등학교 때 국사를 가르쳤던 ○○이다. 물론 그 시절은 학교에서 체벌이 난무하던 시절이기는 했다. 지각, 땡땡이 등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남녀 구분없이 발바닥을 10대씩 맞기도 했고, 기숙사에서는 기상시간 이후 잠을 잤다는 이유, 공부 시간에 잠을 잤다는 이유 등등으로 사감에게 엉덩이에 농구공처럼 파란 멍과 물집이 생길 정도로 맞기도 했다. 물론 체벌 없이 학생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면서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감정 없이 기분 나쁘지 않은 농담으로 수업 분위기를 좋게(?) 해주며 체벌을 가하는 선생님은 그나마 지금도 거부감이 적다.

이 양반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도 학급에서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던 내게 시험이 끝나고 나면 늘 나에게만 공개적으로 시험 성적을 물어봤다. 심지어 같은 반 담임도 아닌 옆 반 담임이었다. 어떤 대답을 하던지 그 정도 성적으로 뭘 하겠냐는 핀잔, 원수 되는 말을 내뱉었다. 재밌는 농담도 자주 하고 유쾌한 성격이라 수업 시간에 인기가 없는 선생님은 아니어서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어느 날은 일어나라고 하더니 내 뺨을 툭툭 때리기 시작했다. 감정이 있는 듯 없는 듯 뺨을 때리는 듯 귓방망이를 때리는 듯 그렇게 때리기 시작했다. 맞는 나도 내가 왜 맞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툭툭 던지는 손과 함께 툭툭 내뱉는 농담에 웃는 학생들도 있었고 나도 이게 장난인지 뭔지 상황판단이 애매한 상황에서 뒤쪽 사물함 있는 곳까지 맞으며 밀려났다. 그러더니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선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내 기억에 오류가 있어 수업 시간에 졸았을 수도 있겠지만, 쉬는 시간에 한 친구가 ‘근데 너 왜 맞은 거냐?’ 라고 물었을 때는 '나도 모르겠다'는 억울한 대답만 나왔다.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아직 어리숙해서 였는지 분위기에 휩쓸린 건지 그렇게 맞고도 억울하다는 생각에 한번도 부모님에게 하소연한 적이 없었다.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고, 체벌과 폭력이 때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스스로 납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러 나중에 어머니에게 내가 맞은 이유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듣고 말았다. 당시 우리 가족은 그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분과 그와 연줄이 닿아 만남의 자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다녀오고 난 후 아버지 말씀이 그가 자꾸 돈을 요구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는 것이었다. 돈을 안줬더니 그 이후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맞은 이유가 그릇된 관심이었고, 단순히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의 폭력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 우리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관리자 직책으로 그의 이름이 보였다. 사립학교여서 관리자를 돌아가면서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이런 사실을 본인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폭력은 피해자에게는 평생 각인되기도 하지만, 가해자에게는 쉽게 잊히기 때문이다. 영화 ‘선생 김봉두’ 같은 반전드라마가 일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법도 없다. 특별한 계기로 지나간 잘못을 뉘우치고 존경스러운 선생님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람의 생각은 왜곡되기 마련이므로 오해였을 수도 있다. 뭐 어찌되었든 그건 그의 일이므로 오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말이 나온김에 오늘은 그의 행복을 빌어야겠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이라도 주었음에 감사해야겠다. 이미 지나가버려 흉터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잊혀진 그 일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용서 해야겠다. 이 글을 쓰게 함으로써 옛일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가 주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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