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는 목요일.
늘 아들의 취침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 미리 준비해서 조금 더 일찍 재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새벽 4시 기상을 하는 나 역시 최소한의 수면시간을 보장하려면 9시반에는 누울 필요가 있었다. 아내에게도 이런 부분을 몇 번 부탁했지만,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자 이제는 나 혼자라도 먼저 방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겼다.
아내도 그런 나의 말을 아예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9시 반 전에 맞추려니 시간이 빠듯해서 신경이 쓰였는지, 얼마 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처음에는 오빠가 9시 반에 혼자 들어가 버리면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제는 내려놓고 그냥 여유 있게 준비하고 자려고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라고.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뭔가 마음에 안 들어 보였다. 최근 오래된 집으로 이사해서 난방을 떼어도 외풍이 심해 특히 새벽에는 공기가 쌀쌀하다. 아들 감기 증세가 나아지지 않고 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곳에서 자기가 싫다고 했다. (결국 아들이 따뜻한 방에서 잔다고 하여 결국 그곳으로 갔다.)
이후 아들과 나에게 장난감 정리를 하라고 했고, 아들에게 아빠는 늦어서 들어가겠다고 굿나잇 인사를 하자고 했더니, 좋지 않은 표정으로 ‘엄마도 잘 거야’라고 말하며 불만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느낌은 분명했다. 굿나잇 인사하는 내게 대꾸도 하지 않았으니까. 나 역시 굿나잇 키스는 생략했다. 곧 나의 기분도 나빠졌다.
서운한 감정인지,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어서 나의 감정을 찾고 정리하고자 이 글을 썼다.
화가 났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나 정도면 잘하는 것 아니야? 뭐가 그리 불만이어서 잠들기 전에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는 서운했다.
남편으로서 가족에게 잘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
(이것 역시 물론 내 생각이지만)
아내는 남편이 육아나 집안일을 분담하는 일은 당연하며, 자신과 나의 집안일, 육아를 비교해서 5:5로 형평성 있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같은 직종 맞벌이를 하고 있으니까.
문제는 정확히 반으로 하겠다는 생각이 갈등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거다. 모든 일을 오차없이 반으로 나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자신이 손해 보는 장사라고 느끼게 되면 서운함이 드러나고 이는 감정싸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가정을 이루는 부부는 사업파트너가 아니다. ‘동업자’가 아니고 ‘협업자’이다. 정확히 일을 나누고 수익을 반반 나누는 구조가 아니라, 가족공동체로서 때로는 상대방의 일을 도맡기도 하고 더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한 명이 아프기라도 한다면? 손해 보는 장사이니 깔끔하게 이별하고 다른 동등한 조건의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인가?
나는 지극한 희생이나 배려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공평과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오차도 없이 똑같이 나누려고 계산하고 비교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둘 모두에게 실망과 서운함이라는 감정 갈등만을 안겨줄 뿐임을 말하고 싶은 거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가정의 분업은 어떠한가? 불공평한가?
예전 누군가 집안일 역할분담을 어떻게 하냐고 하자, 아내가 이렇게 답했다.
‘주방 일만 남편이 해요.’
‘만’이라는 그 한마디가 거슬렸다. 아내는 자신이 더 희생하고 있다는 전제를 밑바탕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어쩌다 기회가 되어 내가 하는 가정의 일 목록을 적어본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일 : 주방일 일체(장보기, 식단 짜기, 하루 두세 끼 요리하기, 설거지하기, 간식준비, 도시락 싸기), 아들 목욕, 주로 운전하기, 아들 픽업, 차량 관리하기, 집 하자 보수-유지(방충망 설치, 음식물처리기 설치, 고장 난 것 수리 등), 가계부 정리하기(보험, 수입 지출관리, 고정지출, 공과금 관련, 미래 예산 계획), 재산관리 등 중요 가정사(계약, 임차, 부동산 연락 등 업무 일체)
아내가 하는 일도 적어보았다.
빨래, 청소, 분리수거, 아들을 주로 돌보는 역할(양치, 재우기, 밥 먹이기, 약 챙기기, 똥 뒤처리 등), 생필품 등 생활용품 주문하기, 아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과 소통 및 업무 일체.
일을 나누다 보니 서로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로 나누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빨래, 청소, 주방일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이보다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일을 나눌 수 있을까? 역할을 교대한다면 서로 만족할까?
만약 역할을 바꾼다면 주방일 ↔ 빨래, 청소
또는 주방일, 아들 목욕, 운전, 차량 관리, 집 하자 유지보수 ↔ 빨래, 청소, 아들 주로 돌봄
*역할 교대로 내가 빨래, 청소한다면 일주일 별 또는 월별로 계획을 짜서 침대, 이불, 커튼, 화장실 청소 방 및 거실 청소, 먼지 제거 등을 계획에 따라 실천해보자.
아무튼 저녁에 조금씩 아들의 취침 시간이 늦어지더니 덩달아 기상 시간도 늦어지고 있다.
문득 역할을 교대하여 적어도 추운 겨울 때에라도 내가 아들을 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역할을 교대하면 장단점은 무엇일까? 내가 아들을 재우면 우선 취침 시간을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장점. 취침 시간을 앞당기면 기상 시간이 빨라져 아침에 여유가 있을 것이다. 일찍 자면 아들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 겨울에 따듯한 방에서 재울 수 있다.
단점. 저녁이나 새벽 시간 확보가 줄어들거나 불확실할 가능성이 있다. 새벽에 안방에서 내 책상을 사용하려면 번거롭다. 저녁 시간이 빠듯해질 수 있다. 집에 와서 아들과 놀다가 6시 반까지 저녁 먹고 아내가 운동 다녀오면 7시 반 9시까지 최대한 운동하고 씻고 바로 자야 한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주일 동안 기간을 정해놓고 고민을 해야겠다.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추스르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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