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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기록

이사 하루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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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청소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넷 이전 설치, 이사업체 등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현재 사는 집의 짐을 조금씩 정리했다. 귀중품과 당장 써야 하는 소지품 등을 따로 모았다.

새삼스레 이 집에 정이 많이 든 느낌을 받았다. 새 아파트 첫 입주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늘 깔끔하게 관리하려고 신경 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 집에 애착이 있었나보다. 아마도 이사 갈 집이 더 오래되고 심란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짐 정리를 하고 여기저기를 닦다 보니 집을 빌려주는 것인데도 마치 자식을 시집·장가 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도, 마지막으로 아들과 목욕 놀이를 하면서도, 잠자기 전 '잘 자' 인사를 하면서도 내내 뒤숭숭했다.

 

○○, 아빠가 ○○이 많이 사랑해. 오늘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잘 자고 좋은 꿈 꿔. 우리 내일 새로운 집에 가서도 행복하게 잘 살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을 보며 뭉클했다.

이건 무슨 느낌이지? 뭔가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인데. 연인과 헤어지는 느낌 같기도 하고.

고맙게도 아들이 가장 밝고 긍정적이다.

아내도 샤워하며 잘 있어라고 집에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괜히 나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길을 자처한 것 같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이사 청소를 점검하고 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던 것이 생각났다. 마음이 약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는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내가 꿈꾸던 미래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할 수 있을까?

남들처럼 살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이것이 정답일까?

이 순간도 소중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너무 먼 미래만 보고 현재를 희생한 건가?

 

문득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들이 모두 나의 자기 사명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일어나지도 않은 것에 고민하지 말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저질러진 일이다. 쓸데없는 고민하기 보다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나는 내 삶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다.

나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 다른 삶을 산다.

넌 할 수 있다. 넌 해낼 능력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행복한 때도 있고 뭔가를 견뎌야 하는 때도 있다. 오늘은 약간 그런 날이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담담하게 꾸준히 하자. 이사하고 나면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자기 사명서도 다시 한번 점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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